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VK 45.01(P) (문단 편집) ==== 램티거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램티거.png|width=100%]]}}} || || '''Rämmtiger''' || 축성진지 파괴용 [[충각]] 장착 전차. 스탈린그라드에서의 교훈을 통해 히틀러는 1942년 11월 22일, 건물파괴용 전차인 램티거 1대의 생산을 명령한다. 이에 대해 포르쉐는 1942년 12월 7일에서 1943년 1월 5일까지 1달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에 설계를 마치고 설계도면만을 가지고 히틀러에게 보인 결과 3대의 VK4501(P) 차체를 이용하여 램티거/라움판처 티거(P)(Raumpanzer Tiger(P)) 생산 허락을 얻어낸다. 이 차량은 VK45.01(P)의 포탑을 제거하고 차체에 자체 방어를 위한 MG34 기관총 1정만을 장비한 경무장이었지만, 차체 전체에 80~100mm 두께의 2차 장갑판을 삼각뿔 모양(드릴 모양)으로 덮어 두꺼운 건물 외벽을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스탈린그라드의 당시 폐허가된 건물 더미 속에서 저항하는 러시아의 저격수에 의해 작전 자체가 무산되고 커다란 인명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응무기가 없어 고전한 것을 타파하기 위해 생산된 것인데, 히틀러의 판단으로는 향후의 전투 양상이 주로 시가전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였고 벽 뒤에 숨은 소수의 저격병을 향해 뚫고 들어가 밟아 뭉게는 속시원한 전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시가전을 대비하여 3호 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sIG-33B와 4호 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브룸베어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개발명령이 떨어졌다. 1943년 5월, 3대의 램티거가 완성되었으며 8월까지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43년 8월 이후 이들 램티거 3대의 행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실전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니벨룽겐 근교의 실험장에 방치 된것으로 보인다. 1943년 8월 이후 이 램티거가 기록에 다시 등장하것은 1945년 5월 독일 항복 이후로 소련군이 촬영한 사진 한장이 전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